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끔찍한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몇 년 전 넷플릭스 영화로 만들어져 공개되었고, 다양한 실화 바탕의 재난 영화를 제작하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나 범죄 오락 영화라기보다는 펼쳐지는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과 같이, 건조하지만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정부청사에 폭탄 테러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할 동안 범인 '아르네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유유히 '우퇴이아'섬으로 향하는데, 이 곳에서는 청소년 캠프가 열리고 있었죠. 범인은 정부청사 테러사건 때문에 보호 명목으로 왔다며 아주 손쉽게 섬으로 진입합니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아이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섬 이곳저곳으로 도망가는데, 범인은 마치 사냥을 하듯 끝까지 추적해 아이들을 죽입니다. 그중에서는 '빌야르 한센'이라는 소년과 그 동생도 있었죠. 빌야르는 동생과 절벽에 숨는데, 범인이 이들을 찾아내버립니다. 동생을 무사히 도망가게 했지만 총에 맞아 쓰러진 빌야르. 이 날 69명의 아이들이 이 섬에서 사망했습니다.
경찰이 도착하자 범인은 저항도 없이 순순히 체포됩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변호사 한 명을 직접 지목해 선임합니다. 본인의 죄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없는 범인을 마주하는 변호사. 범인 브레이브비크는 순혈주의자였습니다. 본인은 극우주의 단체의 행동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를 하는 범인. 죄 없는 아이들을 죽여놓고도 당당한 범인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하지만 변호사는 맡은 소임을 다합니다. 변호사를 지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죠. 이하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빌야르 한센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재활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빌야르. 그에게는 신체적인 상해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큽니다. TV에 등장하는 범인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무서워할 정도로 트라우마에 힘겨워하는 빌야르. 다치지 않았지만 그 현장에서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빌야르는 범인에게 지지 않겠다 합니다. 빌야르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단단해진 마음으로 증인 출석을 합니다. 범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빌야르, 그 섬에서 아이, 형제, 자매, 친구들을 잃은 사람들. 끝내 범인은 무기징역에 처해집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대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인간이 죄없는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사건, 노르웨이에서 10년 전 발생한 실화입니다. 섬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아이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범인의 모습에 기가 차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겨우 숨어있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 총소리, 비명소리만 들리는 섬,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내내 이게 실화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7월 22일 저는 뭘 하고 있었길래 이런 끔찍한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현실이 이리도 잔혹한데, 뉴스 기사 한 줄로 읽고 넘어갔을 저의 무지함이 개탄스러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화는 사건을 기록하는 것과 같이 연출합니다. 오락성을 최대한 빼고, 가장 담백하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특히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그 연출이 돋보이죠. 신파는 없고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조망하는데, 이 연출로 사건은 사건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중첩된 경험과 생각, 그리고 각기 다른 삶이 한 데 모여 사건 그다음 시간들의 입체성을 구현합니다.
먼저 사건의 범인이 늘어놓는 변명에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습니다. 그저 본인은 정의를 구현한 것이라 확실하게 믿고 있으며, 그런 믿음이 깨질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을 오늘날의 이성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단죄할 수 있을까요. 노르웨이의 법을 따르자면 무기징역 밖에 없으나, 그마저도 서울의 원룸 하나보다 좋은 시설을 갖춘 감옥, 소파와 플레이스테이션이 제공되는 곳에서 평생을 놀고먹는 것뿐입니다.
둘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아파해야 하는 사람들, 빈 자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범인을 죽일 듯이 미워하면서도 그날 그 상황의 트라우마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그 날 겪은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경험하는 사람들과 그 옆의 가족들. 사건은 끝나도 그들에게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신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며 절망하기도 하고 이 일이 일어나게 된 모든 원인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빌야르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마치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사건 다음의 시간들을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잊고 넘어갈 수 있을까요. 7월 22일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 뿐만 아니라 여태껏 지나왔던 수많은 인재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뉴스 기사 하나로는, 그저 말로는 그들의 고통을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겠죠.
셋째, 이 범인의 호출로 불려온 변호사가 있죠. 그는 영화 내내 어떤 감정표현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직업정신으로 이 사건을 대하는 변호사.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범인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그의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는 법의 편에서 일을 처리합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이니까요. 범인이 무기징역을 받은 후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변호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저 그의 복잡했을 심경을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영화는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처럼 감상 가능합니다. 그래서 더 와닿고, 더 충격적이며 공포스러웠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그 이상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것,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를 그저 화면으로 보여주는 실화 기반의 영화, 앞으로 절대 잊히지 않을 "7월 22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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