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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해석 - 영화 < 버닝 (Burning, 2018) >

진득한 영화리뷰

by 호누s 2020. 12. 2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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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해석 - 영화 < 버닝 (Burning, 2018) >

 

요즘 넷플릭스 영화 '콜'의 주연으로 소름 끼치는 연기력을 보여준 전종서 배우의 작품,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Burning, 2018)" 입니다!


1. 영화 정보

영화 포스터

감독: 이창동

출연진: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러닝타임: 2시간 28분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왓챠, 티빙


2. 줄거리

종수

알바를 하던 종수(유아인 배우)는 우연히 마트 앞에서 행사 도우미로 일하는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 배우)를 만납니다. 정확히는 해미가 종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했죠. 일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김에 술을 마시는 둘. 해미는 종수에게 귤 팬터마임을 선보입니다.

 

"여기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거야."

 

종수는 아버지가 부재한 사이 파주 본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소를 키우는 오래된 시골 농가, 너저분한 집, 매일 밤 울리는 말 없는 전화소리. 종수는 글을 쓰려고 하는 작가 지망생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글도 쓰고 있지 않습니다. 

해미 

해미가 종수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작은 단칸방, 해미는 집에 고양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고양이가 아주 수줍어서 다른 사람이 오면 숨어버린다고 하죠. 해미는 본인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종수에게 집에 와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고양이 보일이의 밥을 좀 챙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아프리카로 떠난 해미. 통 연락이 되지 않다가, 돌아오는 날쯤 공항으로 데리러 와달라는 전화를 받은 종수. 아버지의 오래된 트럭을 끌고 공항으로 향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해미를 맞았는데, 해미 옆에 웬 딴 놈이 하나 서있네요. 미국 교포 느낌 나는 '벤(스티븐 연 배우)'이라는 남자, 포르셰를 끌고 강남에 사는 부자였습니다. 셋은 저녁식사를 함께합니다.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본 석양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며 눈물을 흘리고, 벤은 본인은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며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종수의 집을 찾아온 해미와 벤

해미는 줄곧 벤과 어울립니다. 하루는 벤의 집으로 종수까지 초대한 날, 벤의 친구들 모임에 종수와 해미를 동행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본 '그레이트 헝거' 춤을 추는 해미, 비웃는 벤의 친구들, 하품하는 벤. 어느 날은 해미와 벤이 종수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와인에 대마까지 하는 이들, 잔뜩 취한 해미는 옷을 벗고 춤을 추다 잠에 들고, 종수는 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벤은 이 날, 의미심장한 취미를 고백하죠. 

 

"전 비닐하우스를 태워요."

 

이 날, 벤의 차를 타고 떠나는 해미에게 '창녀'라고 막말을 한 종수. 이 날 이후 해미에게 연락이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해미에게 전화가 왔지만 그대로 끊겼습니다. 다시 연락해보려 했지만 더 이상 해미와 연락이 되지 않는군요. 해미의 집을 찾아간 종수. 집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고양이도 없었죠. 팬터마임 학원 선생님도, 행사 도우미 동료들도 해미를 본 지 오래됐다는데, 해미에게는 가족도, 돈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결말 *스포 주의*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는 종수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벤의 이상한 말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고, 종수는 버려지거나 불탄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해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죠. 이곳저곳을 헤매던 끝에, 마침내 벤을 찾아갑니다. 

 

"해미는 사라졌어요. 연기처럼."

 

벤의 집에서 발견한 화장품들, 해미의 시계, 그리고 이 집에서 처음 보는 고양이. '보일아' 하고 불러봤는데, 고양이가 종수에게 다가옵니다. 

아무도 없는 공터, 종수는 벤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다가가서는 벤을 죽여버리고, 차와 함께 불태워버립니다. 


3. 리뷰 & 해석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영화입니다. 이렇게나 강한 여운이 남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배우 유아인과 관련된 이슈 때문에 별점 테러를 맞고 빛을 보지 못한 영화였죠. 저에게는 2018년을 대표하는 인생작입니다. 작품을 처음 관람하고, 한 일주일간 비닐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종수의 무력한 표정이 잊히지 않아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종수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해미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더군요. 그래서 무려 세 번을 재관람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생각해볼거리를 여럿 던지며, 영화 속 벤의 말대로 영화가 전하는 '메타포'에 대해 다양하게 해석해볼 여지를 줍니다. 제가 그동안 생각했던 세 가지 포인트에 대해 해석을 해볼까 합니다. 

 

1) 그레이트 헝거와 리틀 헝거

"아프리카 부시맨에게 배고픈 사람의 종류가 두 가지가 있대. 하나는 배가 고픈 리틀 헝거, 하나는 삶의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

아프리카에 가서 직접 그레이트 헝거 춤을 배워 온 해미. 이 말을 들은 종수는 별 반응이 없습니다. 반면에 앞에서 그레이트 헝거 춤까지 춘 해미를 종수와 종수의 부자 친구들은 흥미롭게 구경하죠. 멋있는 춤을 감상한다기보다는, 웃긴 행동을 하는 동물원 원숭이를 보는 듯 말이에요. 영화는 이 장면에서 그레이트 헝거와 리틀 헝거를 완벽하게 구분 짓고 있습니다. 그레이트 헝거가 뭔지, 리틀 헝거가 뭔지, 그 의미에는 관심이 없고 눈 앞에서 말하는 해미를 멍하게 바라만 보던 종수는 리틀 헝거,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에 호기심은 가지지만 우스꽝스러운 춤에 정신이 팔리는 해미는 리틀 헝거입니다. 교도소에서 형을 살게 된 아버지, 물류센터 알바가 업인 종수는 그저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리틀헝거, 빚에 쪼들리고 단칸방에서 알바하며 사는 해미도 입에 풀칠하는 것 자체가 먼저인 리틀 헝거. 반면에 벤과 부자 친구들은 그레이트 헝거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여유롭고 풍족한 생활을 합니다. 먹고 살 걱정따윈 없는 이들은 말 그대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벤에게 삶의 의미란 '재미'입니다. 그저 재미있다면 뭐든 하죠. 재미를 위해 친구들과 와인파티를 하고,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돈 없는 해미를 데려다 흥미롭게 지켜보고,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2) 비닐하우스

"그건 그냥 메타포야."

벤이 이렇게 말하자 해미는 메타포가 뭐냐고 물어봅니다. 문예창작과를 나왔으니 알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종수도 메타포가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라고 하자, 진짜 동네방네 비닐하우스들을 살펴보려 다녔던 것을 보면 말이에요. 비닐하우스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벤의 취미가 진짜 '비닐하우스' 태우기 일 수도 있죠. 그러나 정황상 메타포라고 볼 때, 비닐하우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자연스럽게 '해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당장이라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해미의 모습이 딱 버려진 비닐하우스 같았으니까요. "해미는 사라졌어요. 연기처럼." 비닐하우스가 불에 타서 연기가 되어 사라지듯이, '해미'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사입니다. 그러나 사실 벤이 해미를 진짜 태워 죽인 증거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그저 애매한 벤의 말 뿐이죠. 빚더미에 허덕이는 해미가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벤의 집에서 만난 고양이가 진짜 해미의 고양이 보일이인지도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모든 것이 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믿고 본인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리틀 헝거, 무력한 종수의 눈으로 조망한 장면 장면일 뿐입니다. 굳이 본인이 '비닐하우스 태우기'를 즐긴다는 말을 종수에게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 비닐하우스가 그저 무력하고 찌질하며 한심해 보이는 종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종수가 가장 아끼는 사람을 빼앗아 마음을 흔들고, 전혀 다른 부류의 집에 초대하고 사람들 속에 섞여 소외감과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글도 하나 안쓴 사람을 작가라고 소개하며, 애가 타게 만들면서 말이죠. 종수는 결국 벤의 영향을 받습니다. 영화에서 실제로 무언가가 불타는, 'burning' 하는 직접적인 장면은 종수의 방화 장면, 딱 하나뿐입니다. 아, 영화 내내 까맣게 타들어가는 종수의 마음도 그렇군요.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3) 보이지 않는 것들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거야.'

좋은 영화에 불필요한 대사란 없습니다. 특히 초반에 술 취한 해미가 스치듯 말한 이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해미가 살던 방식입니다. 생존 방식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해미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본인에게 없는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뿐입니다. 그 순간 입안에 침도 고이고, 아프리카도 갈 수 있고, 당장 배고픈 현실 너머 그레이트 헝거의 '삶의 의미'에 손을 뻗어볼 수 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손바닥 위의 귤, 파주 본가의 우물, 자그마한 방 안 보이지 않는 고양이, 그리고 아예 없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 해미. 한편 종수는 그런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진실을 얘기해 봐"

해미는 종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카메라는 종수의 눈을 따라갑니다. 관객은 종수의 시점에서 해미의 대사를 듣습니다. 그럼 관객은 말해줄 수 있겠죠. 이 작품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가요?

 

독특한 분위기의 여운이 긴 영화. 어수룩하고 무력한 유아인의 연기는 그저 '종수'라는 평범한 인물입니다. 영화 '콜'에서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로 분한 전종서의 아슬아슬하고 연약한 '해미' 연기. 스티븐 연의 친절한 싸이코패스 연기. 세 배우의 연기가 일품인 이 영화, 제 기준 별 다섯 개 만점인 인생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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