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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의 눈으로 보는 이상한 이 세상 - 넷플릭스 영화 < 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8) >

진득한 영화리뷰

by 호누s 2020. 12. 2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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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의 눈으로 보는 이상한 이 세상 - 넷플릭스 영화 < 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8) > 

 

청룡 영화상, 백상 예술대상 수상작, 

보편적인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은희의 이야기를 담은

"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8)"입니다. 


1. 영화 정보

영화 벌새 포스터

감독: 김보라 

출연진: 박지후, 김새벽, 정인기, 이승연, 박수연, 박서윤, 길해연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2시간 19분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티빙


2. 줄거리

은희

1994년, 대청중학교 2학년 김은희. 부모님은 미도상가에서 떡집을 하시고, 위로 고등학생 큰언니와 곧 고등학생이 되는 오빠가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아빠는 공부도 못하고 밖으로 나돈다며 언니를 매일 혼내고, 오빠에게는 기대가 큽니다. 식사시간은 아빠 말씀 외에는 조용하고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파스로 떡칠한 엄마의 등. 낮에 잘 차려입고 어디론가 나가는 아빠. 은희의 눈으로 바라보는 집안의 모습입니다. 

 

그런 은희가 하루 중 웃는 시간은 딱 한 번. 남자 친구와 같이 하교할 때입니다. 설레고 풋풋한 첫사랑. 학교에서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날라리로 찍히지만 말이에요. 남자 친구와 하교하고 집에 온 날, 오빠한테 딱 걸렸네요. 반항도 못하고 두드려 맞았습니다. 오빠한테 맞았다고 부모님한테 일러는 봤지만 시큰둥합니다. 맞을 만한 짓을 했겠지, 이게 돌아오는 대답이네요. 어느 날, 외삼촌이 돌아가셨습니다. 은희는 엄마의 슬픈 뒷모습을 봅니다. 

 

은희는 단짝 친구 지숙이와 함께 한문 학원에 다닙니다. 지숙이는 오늘 골프채에 얻어터지고 왔네요. 내가 죽어버리면 누가 미안해할까? 둘은 이런 대화를 합니다. 오늘은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네요. 서울대를 다니다 휴학한 영지 선생님. 나긋한 선생님의 말투도, 수업도 마음에 든 은희.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영지 선생님은 이렇게 묻죠. '얼굴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나요?' '한 400명쯤?' 은희가 답합니다. '그럼 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은희는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합니다. 

은희와 한자학원 영지선생님

어느 날 갑자기 남자 친구와 연락이 끊긴 즈음. 지숙이와 트램펄린을 타고 놀던 은희는 동네 문구점에서 도둑질을 하다 딱 걸렸습니다. 지숙이가 은희 부모님의 떡집 주소를 일러버렸죠. 그러나 웬걸, 그냥 경찰에 신고하라는 은희의 아빠 말에 어이없어하며 은희와 지숙이를 내보내는 문구점 주인. 은희는 지숙이에게 화가 잔뜩 났지만, 지숙이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학원도 째고 도망가버렸습니다. 

 

혼자 학원을 찾아 영지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어버린 은희. 선생님이 주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난 내가 싫어질 때, 그 마음을 들여다봐. 아 내가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그 날, 은희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다음 날, 선생님께 드릴 떡을 선물한 은희. 얼마 후 다시 지숙이가 등원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은 분필을 놓고 노래를 조용히 불러줍니다. 

 

은희와 지숙이는 춤을 추고 놀고, 담배도 피우고, 그런 은희를 좋아하는 중학교 1학년 민지도 만났습니다. 꽃도 사주고, 마음도 전하는 민지. 은희는 민지와 노래방도 가며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한동안 연락 없던 남자 친구 지완이가 나타났습니다. 다시 만나서 지완이에게 줄 노래 테이프 선물도 준비했는데, 그 날, 지완이 엄마가 나타나서는 얘가 방앗간 집 걔냐며 지완이를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렇게 둘은 헤어졌죠. 

수술 후 홀로 퇴원하는 은희

은희는 귀 뒤에 혹이 생겨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큰 병원에 찾아가 보라는 의사 선생님. 수술을 해야 한다는군요. 진단을 받고 나와 갑자기 엉엉 우는 아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은희. 입원 전, 은희는 영지 선생님께 책을 빌려주었습니다. 선생님을 꼭 껴안고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말합니다. 혼자 병원에 있는 사이 민지도 왔다 가고, 영지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알았지?"

 

시끌시끌 다들 은희를 챙겨주던 병원에서 퇴원한 은희는 조용한 집에 홀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집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죠. 은희는 더 이상 참지 않습니다. "나 성격 안 이상해! 안 이상하다고!" 소리 지르던 은희는 오빠에게 뺨을 맞고 고막이 찢어졌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진단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 합니다. 증거가 된다면서 말이죠. 

 

그리고 영지 선생님은 그 사이 학원 일을 그만뒀습니다. 

 

결말 *스포 주의*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떡을 가만히 바라보는 은희

방학이 끝난 가을 아침, '성수대교가 무너졌대!' 학생들이 소리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강북으로 학교를 다니는 언니가 번뜩 생각난 은희, 아빠에게 전화를 겁니다! 다행히 은희 언니는 버스를 놓쳐 성수대교 사고를 피했군요. 다섯 명이 앉은 저녁 식탁, 오빠가 갑자기 끅끅대며 눈물을 터트립니다. 며칠 후 은희에게 소포가 하나 도착합니다. 영지 선생님에게 온 소포군요. 열어보니 스케치북과 편지가 들어있습니다. 

 

은희는 떡을 싸서 소포의 주소를 따라 영지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온 건 영지 선생님의 엄마. "어떡하지, 소포는 어제 왔는데, 우리 영지는 이제 없네" 영지 선생님 엄마가 눈물을 흘립니다. "그 큰 다리가 왜 무너져서..." 은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영지 선생님의 방에 앉아 있다 돌아옵니다.

 

새벽, 은희는 성수대교로 향합니다. 무너진 다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은희.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남긴 편지를 읽습니다. 


3. 리뷰 & 해석

은희로 나오는 박지후 배우의 눈빛이 자꾸만 생각나는 영화입니다. 은희는 그 맑고 큰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은희를 지켜보는 관객은 자꾸 은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마음속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보면 열다섯 살, 스쳐 지나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고, 우리의 모습이 보이죠. 열다섯의 눈으로 본 세상은 이상한 것들 뿐입니다. 평범한 듯 익숙한 듯 흘러가는 매일, 답답해도 벗어날 생각조차 들지 않는 이상한 일상. 어제만 해도 유리까지 때려 부시며 싸웠던 부모님이 아침에 일어나서는 웃으면서 TV를 함께 보고 있고, 날 좋아한다던 후배는 어느 날 갑자기 찬바람이 쌩쌩 불고, 좋아했던 남자 친구에게는 '나 너 좋아한 적 없어'라고 말하며, 내가 달고 있던 혹을 떼어서 어딘가에 마음대로 버려버리는, 이상한 세상. 

 

은희가 좋아한 것은 그냥 '나'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붙여주는 '날라리' 딱지도, '서울대를 가고 싶은 중학생'도, '착하고 말 잘 듣는 막내딸'도 아니고, 그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 친구에 관심이 생기는 열다섯 살 평범한 은희에 대한 관심이었죠.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열다섯 살,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사이에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 은희는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저 아프지 않은 엄마, 때리지 않는 오빠, 밤마다 사라지는 언니, 나를 봐주는 아빠, 평화로운 집안 분위기가 있었더라면 달랐을지도 모르죠. 

 

영지 선생님 또한 사연이 많은 인물 같습니다. 우울증을 앓았거나, 크게 힘든 일을 겪었거나, 생각이 많은 사람 같으면서, 은희와 비슷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더욱 와 닿는 말을 해줄 수 있던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얼굴만 아는 사람들' 속에서, '마음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만난다는 것. 성장은 만남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개개인의 경험은 모두 다르지만, 그저 마음을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안고 있는 짐을 던져버리고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요. 

 

우리는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나를 둘러싼 것들에 치여 내 속조차, 주변조차 둘러보지 못합니다. 죽는 날까지 우린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겠죠.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 어딘가에 힘들었던 순간과 즐거웠던 순간이 공존한다는 것뿐. 혼란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열다섯 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벌새,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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