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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을 보라!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2013)> 해석/ 줄거리/ 리뷰

진득한 영화리뷰

by 호누s 2021. 4. 2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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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을 보라!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2013)> 해석/ 줄거리/ 리뷰

오늘의 영화는, 이 시대의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Laurence Anyways, 2013)"입니다. 무려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속에 쉽게 접하지 못하던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어쨌거나, 사랑이야기인 이 영화.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상미와 심장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연출로 절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 곧 눈물이 펑 터질 것 같다가도 결코 울고 싶지는 않았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줄거리

고등학교 교사인 주인공 로렌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연인 프레드가 있습니다. 생일이라 특별한 저녁식사 대신 뉴욕행 티켓을 준비했다며 신난 프레드에게 로렌스는 충격 고백을 합니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 정말 중요하니까 내 말 잘들어. 더는 못 참겠어. 죽을 것 같아. 말 안 하곤 못 배기겠어. 잘 들어. 난... 죽을 거야"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양성애자도 아니고. 본인이 성별을 잘못 가지고 태어났다 말하는 로렌스. 본인의 몸은 자기 것이 아니며, 내 안의 나는 사실 여성이고, 이제부터 여자로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35년을 이렇게 산 건 죄악이나 다름없어.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훔친 거라고."

 

혼란스러워하는 프레드. 그러나 그녀는 그토록 사랑하는 로렌스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곁에 남기로 결심하죠. 다음으로 로렌스는 엄마를 찾아가서 커밍아웃을 합니다. 온종일 TV에 정신 팔린 아빠. 그런 아빠를 거의 모시다시피 하며 사는 엄마는, 반은 충격을 받고 반은 수긍합니다. 어릴 적부터 로렌스가 여장을 즐겨했으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로렌스는 드디어 여장을 한 채 학교에 출근합니다. 떨리는 마음, 쏟아지는 시선, 학생들의 침묵.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듭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수업 관련 질문을 하죠. 그렇게 로렌스의 인생 제2막이 펼쳐집니다. 그는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모두가 그를 위아래로 훑고, 눈을 떼지 못하지만 말이에요. 여장을 하고 첫 출근을 한 그 날, 로렌스는 엄마를 찾아가 비싼 붓을 선물합니다. 엄마도 이제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라고 말이죠. 

 

한편 프레드는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던 끝에 테스트를 합니다. 그렇게 여성 병원에 전화를 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프레드는 바로 학교에서 해고당합니다. 학부모의 반대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찾은 바에서 두드려 맞기까지 하네요. 엄마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했지만 아빠를 핑계로 외면받았고, 그런 그를 받아준 사람은 지나가다 만난 또 다른 여장 남자, 베이비 로즈였습니다. 로렌스에게는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식당에 마주 앉은 프레드와 로렌스. 엉망이 된 로렌스의 얼굴을 보고 프레드는 화가 납니다. 로렌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넘어졌다 부딪혔다 변명을 합니다. 식당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로렌스에게 쏟아집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종업원의 말에, 끝내 폭발해버리는 프레드. 

 

"아무리 봐도 정말 특이하세요. 재미로 그런 거예요? 다들 궁금해해서요. 요즘은 길에 널렸잖아요. 직업인 사람들도 있고. 커플이세요? 잘 어울리네요. 남들 눈 피해서 살기 힘들죠?"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해?"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왜 그래요?"

"생각 따위 속으로나 하고. 남편을 위해 가발 사 봤어? 그런 적 없지? 길에 다니다 얻어터질까 봐 걱정해본 적 있어? 내 입장 생각해봤어? 나처럼 살아 봤어? "

 

끝내 프레드는 로렌스와의 이별을 택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표정으로 찾아온 로렌스. 그를 본 엄마는 아빠가 보고 있던 TV를 집어던져버리고, 로렌스와 함께 집을 나섭니다. 

 

*주의! 이하 영화의 스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 로렌스는 출간 작가가 되었습니다. 샤를로트라는 새로운 여자 친구도 생겼죠. 프레드는 그사이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멋진 집에,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결코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 프레드. 프레드 앞으로 책이 한 권 도착합니다. 다름 아닌, 로렌스의 책이었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프레드의 위로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집니다. 

 

'하얀 벽돌집에 한 부분을 분홍색으로 칠했다. 지루함에 도움이 될까 하고.'

 

로렌스의 책 한 구절을 읽다 말고 밖으로 나선 프레드. 본인의 집 벽돌 하나가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오열합니다. 그렇게 로렌스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를 먼저 받은 사람은 로렌스의 여자 친구, 샤를로트였습니다. 편지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로렌스를 불러보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네요. 샤를로트는 결국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립니다. 

 

편지를 받은 로렌스는 프레드의 집을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애틋하게 재회를 하고, 함께 블랙 섬으로 떠나죠. 모든 것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형형색색 옷가지가 휘날리는 블랙 섬. 그 위를 걷는 프레드와 로렌스. 행복한 미소로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완벽한 것 같았던 여행의 끝에 그들이 식사를 하러 방문한 곳은 성전환 수술을 해서 남자가 된 알렉상드르와 그의 애인이 살고 있는 집. 뭔가 큰 충격을 받은 듯한 프레드. 한 편 로렌스의 여자 친구 샤를로트가 프레드의 남편을 찾아가 모든 사실을 알려준 것 같군요. 로렌스와 프레드는 또다시 싸우기 시작합니다. 널 위해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다는 프레드. 여기서 진실이 터져나옵니다. 로렌스는 그제서야 프레드가 본인의 아기를 임신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두 사람은 그렇게 두 번째 이별을 맞게 됩니다. 

 

또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카페. 저명한 작가가 된 로렌스는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반대쪽에 앉은 이 중년 여성은 인터뷰를 한다면서 로렌스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로렌스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렇게 불편하세요? 쳐다보면 돌이라도 될까 봐요?"

"시선이 그렇게 중요하세요?"

"그럼 그쪽은요? 그러다 숨 막히겠어요. 숨 쉬세요."

 

로렌스는 프레드와 바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본인과의 삶 대신 여성으로 사는 것을 택한 로렌스에게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 프레드. 로렌스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 사이는 로렌스가 여자로 사는 것을 택하기 전에도 엉망이었고, 결국 헤어졌을 것이라는데. 

 

프레드는 화장실에 가겠다 자리를 비웁니다. 시간이 지나도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프레드를 두고 바를 나오는 로렌스. 흩날리는 낙엽 아래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도망치듯 떠나는 프레드와, 프레드가 떠난 자리를 돌아보는 로렌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프레드와 로렌스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입니다. 프레드가 일하는 촬영장 백스테이지에서 로렌스가 프레드에게 철사로 만든 모형을 건네줍니다. 구름모양이냐고 묻는 프레드, 사실 나비모양이라는 로렌스. 

 

"프레드 벨레르예요""

"로렌스 알리아"

"로렌스 뭐라고요?"

"알리아. 뭐, 어쨌든 그냥 로렌스예요. (Laurence Anyways.)"


진득한 리뷰 & 해석

1. 시선의 다른 이름

시선이라는 것은 참 이상합니다. 굳이 입을 열어 문장으로 꺼내놓지 않아도 메시지를 전달하니까요. 무언의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압박이, 두려움이, 불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무섭죠. 

 

영화의 첫 장면,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비칩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눈빛, 위아래로 훑는 눈빛. 그들의 시선을 받는 대상은, 이 영화의 관객입니다. 그 시선을 받은 대부분 사람들의 사고 회로는 다음과 같이 흘러갑니다. 

 

'왜 날 쳐다보는 거지?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바지 지퍼를 안 올렸나? 내 옷이 이상한가? 내가 이상하게 생겼나? 내가 이상한가?'

 

인식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시각이라면,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눈빛에 투영되어 밖으로 뿜어져 나옵니다. 그렇게 뿜어져 나온 무언의 빛은 다시 돌아와 내 모습을 형성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 정확히는 다른 사람이 평가한 나. 그렇게 시선에는 평가가 내포됩니다. '진짜 못생겼네. 뚱뚱하다. 가슴이 납작하군. 눈이 왜 그렇게 몰렸대? 무슨 남자가 저런 옷을 입어? 진짜 나이 들어 보인다. 여자가 아깝다. 저런 문신을 하다니 끔찍하네.' 등등. 이 모든 구체적인 생각을 적나라하게 내비치는, 타인을 향한 시선. 시선에 내포된 폭력.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다 상관없어, 난 당당해,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정말 단 하나의 상처도 받지 않았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로렌스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질문을 한다고 해놓고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 질문자. 남들 시선이 신경 쓰이냐고 로렌스에게 물었지만, 오히려 로렌스가 똑같이 되묻죠. 그러자 질문자는 겨우 아닌 척, 또는 그런 척, 로렌스의 눈을 마주합니다. 아주 또렷하고 차갑게 말이에요. 그런 그녀에게 로렌스는 숨을 쉬라고 말합니다. 작가 인터뷰를 하겠다고 와서는 묻는 질문에 답이나 하라는 식이었던 그녀. 로렌스를 향한 그녀의 평가는 그 차가운 눈빛을 너머 확실하게 전해졌습니다. 본인의 상식 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어쩌면 그 옛날 '정신병'이라 치부했던 성전환에 대해, 여성의 모습을 한 물리적 남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말이죠.

 

로렌스는 진짜 내가 아닌 나의 외피를 죽이고(영화 속에서 실제로 '나는 죽을 거야'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진짜 내 모습, 여성성을 드러내고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여장을 하고 교단에 선 날, 로렌스가 등장하자 시선이 로렌스에게 쏠립니다.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보고 있는 관객까지 숨이 막힐 정도로 심장 떨리게 두려운 그 순간,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 그 전 수업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을 설명해달라고 말이죠. 꽉 잡고 있던 긴장이 탁 풀렸습니다. 그렇죠, 그는 남자로, 여자로 사람들 앞에 선 것이 아니라, 그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로 서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그저 로렌스는 로렌스입니다.

 

그 순간 이후, 로렌스는 결코 본인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잘렸을 때에도, 바에서 피 터지게 맞았을 때에도, 그리고 식당에서 모든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고 종업원에게 무례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말이죠.

 

그러나 그 시선이란 순식간에 스며드는 액체처럼 오묘해서, 좌표 찍은 미사일처럼 타깃 하나를 공격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2. 프레드와 하얀 벽돌집

식당에서 폭발한 것은 로렌스가 아닌 프레드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로렌스를 향한 사랑, 쌓이는 미움과 답답함, 괴로움, 그리고 지긋지긋하도록 잔인한 사회의 시선. 남들과 다른 모습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온갖 사회적 지탄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랑하는 이를 보는 마음이란.

 

원래대로라면 사랑하는 애인의 아기를 가졌다고 알렸을 테고, 함께 아이를 키웠을 테고, 어디 가서 맞진 않을지, 잘 다니던 직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당하진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사랑을 이유로 로렌스와 함께 하기에는 프레드가 넘어야 할 산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실 함께 넘어야 할 산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건 거의 희생에 가깝죠. 애초에 프레드가 이런 삶을 원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몇 년 전 보았던 실화 바탕의 영화 '대니쉬 걸'이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본인의 진짜 정체성을 깨닫고,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남편 에이나르를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주던 아내, 게르다가 있었죠. 문득 이 영화 속 게르다가 얼마나 대단한지, 또는 비현실적인 인물인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는 여자로 살겠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프레드의 모습은 쓰리고 따가울 정도로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그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관객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별 후 가정을 꾸린 프레드의 집은 그 전, 여러 가지 짙은 색으로 물들었던 화면과 달리, 온통 흰색입니다. 내부도 하얗고, 외부도 하얀 벽돌로 지어져 있죠. 화면에도 여백이 가득 채웁니다. 그 안에 프레드가 있습니다. 파티장에서도 거의 신경질적으로 모두를 방에서 몰아내고는 혼자 남길 원하는 프레드. 로렌스가 없는 프레드의 마음 상태는 그렇게 드러납니다. 겉은 멀쩡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은 뭔가 비어있죠. 그렇게 여백만 가득하던 흰 벽돌 위에 색깔을 입힌 것은 역시나, 로렌스. 분홍색으로 물든 벽돌을 발견한 프레드는 그렇게 오열하고 맙니다. 

 

3. "땅으로 내려와 줄래?"

여자가 된 로렌스의 아이도 유산하고, 온갖 현실적인 장애물에 견디지 못하고 이별을 택한 프레드. 몇 년 후 찾아온 로렌스와 다시 만나 블랙 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이는 잠시의 일탈일 뿐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일궈놓은 그녀의 가정이었고, 안락한 집이었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 라며 로렌스의 귀에 박아 넣는 프레드. 로렌스와의 관계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힘들었던 프레드에게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현실 그 자체입니다. 반면 안정적인 직장,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들 등 온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 정도로 로렌스에게 중요했던 것은 본인의 꿈이자 진짜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는 것이죠. 로렌스가 첫 여장을 한 날, 엄마에게 꿈을 다시 찾으라며 붓을 선물하던 그의 모습은 본인이 꿈꿔왔던 것을 실현하며 얼마나 큰 행복감을 느끼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땅으로 내려와 줄래?"

"난 현실 따위 관심 없어.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마지막 재회에서 두 사람의 간극은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져있습니다. 현실 속에 사는 프레드와 아름다운 모습만큼 단단하게 꿈을 지키며 사는 로렌스. 이 대화는 영화 속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 낙하의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로렌스가 프레드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장면에서는 세차장의 물이 쏟아지고, 두 사람의 이별 후 엄마를 찾아간 로렌스의 위로는 비가 내리 붓고, 샤워실 안의 프레드 위로도 물줄기가 떨어지죠. 로렌스의 책을 받아 읽어보던 프레드의 집에는 폭포수가 난데없이 쏟아집니다. 재회한 두 사람이 찾은 블랙 섬에서는 형형색색의 옷가지들이 하늘에서 흩날리듯 떨어지고요. 마지막 만남을 뒤로하고는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쏟아지듯 흩날립니다. 영화 속에서 낙하의 이미지가 나타나는 장면은 모두 두 사람의 감정에 커밍아웃, 이별과 같은 사건으로 감정에 큰 동요가 있을 때였습니다.

 

세차장의 물과 비, 샤워기, 낙엽이 등장하는 장면은 크게 이질적이지 않지만, 낙하 장면 중 두 가지는 매우 비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인상적이기도 하죠. 하나는 로렌스의 책을 읽던 프레드의 집 안에 누가 양동이에 든 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폭포수가 쏟아지는 장면.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 행복한 두 사람 위로 하늘에서 옷들이 떨어지는 장면. 

 

프레드에게 로렌스와의 관계는 비현실이자 꿈 그 자체입니다. 건조하고 깔끔하던 집이 로렌스로 인해 흠뻑 젖고, 꿈을 믿지 않는 그녀 앞에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옷들이 비처럼 떨어지죠. 너무나도 촉촉하고 달콤하며 강렬한 그것은 상처 속에 아프게 스며들던 현실 속의 빗줄기, 물줄기와는 확연하게 다르군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프레드, 그럴 생각 없다는 로렌스. 마지막 이별 후, 두 사람의 위로 금방 바사삭 부스러질 것 같이 마른 낙엽이 흩날립니다. 낙엽이 의미하는 것은 엔딩이자, 건조하게 메말라버린 두 사람 사이의 거리겠죠. 도망치듯 사라지는 프레드와, 그런 프레드가 사라진 거리만 담담하게 바라보던 로렌스의 사랑은 여기서 완전히 끝을 맺습니다. 

 

4. 로렌스 애니웨이

마지막 장면, 로렌스와 프레드의 첫 만남입니다. 로렌스가 건네는 모형을 '구름'이라 말하는 프레드. 사실은 '나비'라고 말하는 로렌스. 로렌스에게 그의 사랑은 아름답게 훨훨 날아갈 꿈이었고, 프레드에게 그 사랑은 비가 되어 내릴 뜬구름이었던 걸까요? 로렌스의 성을 잘 알아듣지 못한 프레드에게 로렌스는 "Laurence anways" 라 답합니다. 성이 무엇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그는 그저 당신과 사랑하고 싶은, 로렌스 자신일 뿐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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