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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블란쳇 주연 영화 < 어디갔어, 버나뎃 (Where'd You Go, Bernadette, 2019) > 리뷰

진득한 영화리뷰

by 호누s 2021. 4. 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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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블란쳇 주연 영화 < 어디 갔어, 버나뎃 (Where'd You Go, Bernadette, 2019) > 리뷰

비포 시리즈, 보이후드의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새로운 영화를 내놓았습니다. 2019년 영화로, 미스터리, 드라마 장르의 작품이자 등장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이죠. 넷플릭스에는 없지만 왓챠와 티빙, 웨이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작품, 오늘의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입니다 :)


줄거리

남극 빙하 사이로 카누를 타고 있는 주인공 버나뎃(케이트 블란쳇 배우)이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장면은 5주 전으로 돌아갑니다. 버나뎃은 아주 오래된 집을 고치며 살고 있습니다. 버나뎃은 말로 온라인 비서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쓰고 있는데요, 난데없이 딸 '비'가 남극대륙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바람에 온갖 불안에 시달리고 있죠. 나무덤불을 없애야 한다며 귀찮게 구는 이웃들은 마주치기조차 싫어하지만 딸 '비' 만은 너무나도 사랑하는 버나뎃. 비도 그런 엄마를 잘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버나뎃은 심한 불면증과 불안에 고통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약에 의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약국에 가서는 이상한 말만 늘어놓아요. 이제까지 받은 약을 다 통 하나에 모아놓았대요. 그렇게 두니 예뻐서라고 하는군요. 

 

어느 비오는 날, 앞집 여자 집에 버나뎃 집쪽의 흙이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 일로 앞집 여자는 버나뎃에게 폭언을 쏟아내죠. 하편,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성공한 엔지니어인 남편 엘진은 이 사건을 듣고 버나뎃에게 도움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왜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지, 도움이 필요한데 왜 상담을 받지 않는지 등을 따지는데. 

 

사실 버나뎃은 유명한 상도 받을 정도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시대의 건축가였습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인물이자 지금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죠. 그러나 어느 날, 어떤 사건으로 건축에서 손을 떼고 남편과 함께 시애틀로 와서 잠적해버린 겁니다. 그 후로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살았고, 더 이상 새로운 활동은 하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이를 여러 번 유산했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인 비가 약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자 비를 치료하는데 온 힘을 다 쏟았죠. 그 시간 동안 남편과의 사이는 소원해져 갔습니다.

 

귀엽고 사소한 것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버나뎃. 딸이 도와준다던 어린 학생들의 코끼리 공연을 보고난 후, 남극에 가겠다 안 가겠다 걱정과 불안 속에 결정을 번복하던 버나뎃은 확실하게 마음을 정합니다. 셋이 같이 남극에 가겠다고요. 그런데 마침 이때 사건이 터집니다. 

 

*주의! 이하 영화의 결말 및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나뎃이 쓰던 온라인 비서 시스템이 사실 러시아에서 만든 범죄조직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메일을 통해 버나뎃의 개인정보를 모두 빼갔고, 조직에서 범죄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FBI가 찾아냈습니다. 이 사실에 남편 엘진은 심리상담사와 동행해 버나뎃에게 남극 여행은 비와 둘이 다녀올 테니 그 사이에 버나뎃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자 충격 먹은 버나뎃, 집에서 도망쳐서는 연락이 두절되는데. 

 

버나뎃은 혼자 남극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던 배멀미도 상상 이상으로 지독했지만 끝내 도착했죠. 버나뎃은 홀로 1인 카누를 타고 빙하 사이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남극 과학기지 연구원에게 샘플 채취 도움을 요청받고 그녀를 도와주기로 하는군요. 그리고 그녀에게 남극에 새로 지을 예정이라는 연구기지에 대해 듣게 됩니다. 여기서 버나뎃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하죠. 이것 저것 물어보고는 그 연구기지에 본인을 데려가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합니다. 거절은 당했는데, 몰래 관리자로 위장해서 도착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무작정 기지 건설을 하게 해 달라 합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던 직원이 그녀를 구글링 해보더니 자리를 마련해주는데, 버나뎃은 영화 내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남극까지 찾아온 그녀의 딸과 남편 엘진을 만난 버나뎃. 엘진은 그녀의 창작활동을 다시 응원하고, 무한한 믿음으로 엄마를 찾아온 비는 엄마를 꼭 끌어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파란색과 빨간색의 독특하게 생긴 기지가 남극에 들어섭니다. 


진득한 리뷰

집안에 고해성사실이 있는 오래된 건물 사이 새는 비를 익숙하게 양동이로 처리하는 모습. 바닥 아래 울퉁불퉁하게 자라난 덩굴을 뜯어내는 대신 그 자리 카펫만 잘라내 고정하는 모습. 예쁘다며 한데 섞어서 담아놓은 약들. 유명한 건축가가 만든 도서관에 들어서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그녀.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 사람들과 섞이기는 끔찍하게 싫고, 불안함에 시달리며 잠도 못자고 공황에 빠지곤 하지만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싫다'라고 약은 먹지 않습니다. 남편도, 이웃들도, 심리상담사도 그녀에게 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느냐며 세상에 적응하라 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남극에 도착해 기지를 건축할 생각에 들뜬 버나뎃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애잔하게 슬퍼지는 이유는 왜일까요. 

 

영화는 세상과 개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그들에게, 또는 현실에 맞춰야 하는 기준, 그것에서 벗어난 무엇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시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살아갈 수 있는 본투비 크리에이터가 창조를 그만뒀을 때, 끔찍하게도 불행해졌습니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아 사람들과 어울리라니, 그건 마치 '버나뎃'이라는 본인을 버리라는 말과 같았죠. 끝내 영화 끝에서 버나뎃은 본인을 잃지 않고 삶의 원동력을 되찾았지만, 너무나도 판타지스러운 영화의 엔딩과 달리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 끼워 맞추느라 나를 잃어버리니까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지?' 이 질문에 대답이 어렵다면 이번엔 '어디갔어? 버나뎃'이 아니라 나의 이름을 넣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지?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과 같은 선에 있으니 말이죠.

 

대학을 졸업할 때 쯤, 저의 미래가 어떨지 그려봤습니다. 이만한 대학을 나왔고 좋은 부모님께 이런 교육을 받아 이렇게 자랐으니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돈도 잘 벌고 어느 정도의 권위도 가지고. 번듯한 직장에 이만한 집안에서 자란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결혼했으니 아이도 둘 정도 낳고... 그렇게 살면 주변에서 보기에도 좋겠더라... 아니 잠깐, 이거 그냥 뭐 평범해 보이는데, 생각해보면 진짜 끔찍하고 이상한 상상인 거예요.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 이맘때쯤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하게 될까요? 뭐 주변에서 보기 좋을 정도로 살고 있어요,라고 하면 되나요?

 

저는 영화를 좋아하고, 글쓰는 것을 좋아하며, 남의 인생 이렇더라 저렇더라 충고당하는 것보다 직접 다 부딪혀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고, 돈보다 설레는 것이 뭔지도 배웠으며 당장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도 하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넘실넘실 오는 파도나 즐겁게 넘으면서 다음에 올 파도 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러니 남극 대륙 어딘가로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봅니다. 세상에 상처를 받을지언정 현실에 타협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전하는 버나뎃의 이야기는 그렇게 '평범하게' '세상에 적응하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나를 잃어버리지 마세요.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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