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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머물 수 있는 추억을 고른다면 - 넷플릭스 영화 <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 1998) >

진득한 영화리뷰

by 호누s 2021. 2. 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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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머물 수 있는 추억을 고른다면 - 넷플릭스 영화 <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 1998)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차가운 면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그의 영화는 늘 추운 날 꽁꽁 언 사람을 녹이듯 포근하고 다정합니다. 오늘은 그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 1998년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소개해드립니다. 


줄거리

 

오래된 건물, 사람들이 하나하나 찾아옵니다. 이 곳은 죽은 이들이 저세상으로 가기 전 일주일을 머무는 곳, 림보입니다. 이 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살아생전 추억 중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림보의 직원들은 세트장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죠. 일주일이 지나는 날, 사람들은 본인의 소중한 기억을 감상하며 저세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저 세상에서는 그 소중한 추억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직원들의 업무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과 면담을 하는 것, 추억을 재연할 수 있는 세트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스물두 명의 사람들이 림보에 방문합니다. 네 명의 직원들은 각각 담당할 사람들을 배정받고, 면담을 시작합니다. 곧바로 소중한 추억을 고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고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오빠가 선물해준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던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할머니. 비행기를 조종하며 구름 사이를 지나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젊은 남자. 전차를 타고 선선한 바람을 맞던 그 때를 이야기하는 나이 든 남자. 정신이 아홉 살 때에 머물러 있어 어떤 추억이 아닌 벚꽃이 흩날리는 봄을 이야기하는 할머니. 수많은 배신을 당했지만 그렇게도 사랑했던 한 남자를 이야기하는 중년의 여성. 디즈니랜드에 가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중학생 여자아이 등.

 

*이하 본 영화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70세의 평범한 와타나베 할아버지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70년의 기억을 담은 비디오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고만고만한 인생, 모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는 인생이라는데, 그런 할아버지도 림보에서의 마지막 날, 아내와 공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영화를 보러갔던 평범한 하루를 고르게 되죠. 그러나 영영 선택을 하지 못한 21살의 청년도 있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되냐,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되냐 이야기하는 이 청년은 결국 끝내 선택을 하지 못하죠. 선택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림보에 남아 림보 직원이 됩니다. 

 

림보 직원으로 있던 모치즈키 또한 선택을 하지 못해 남아있던 남자였는데요. 그는 사람들을 모두 보낸 그날 오후, 와나타베 할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다가 그에게 남긴 편지 하나를 읽게 됩니다. 사실 와타나베 할아버지의 아내 교코에게는 끝내 잊지 못한 죽은 정혼자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모치즈키였다는 것. 교코가 림보에 방문했던 때의 영화 기록을 찾아본 모치즈키와 보조 시오리. 교코가 소중한 추억으로 고른 순간이 바로 공원에서 모치즈키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순간임을 알게됩니다. 

 

모치즈키는 혼자 공원 세트장에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끝내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을 선택합니다. 모치즈키가 떠나면 모든 것을 잊을거라 서운하게 생각하는 시오리. 모치즈키는 세트장 그 의자에 앉아있던 그 순간을 선택합니다. 촬영하는 모치즈키의 눈 앞에는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림보의 직원들이 한눈에 담겼죠. 모치즈키의 영화 감상이 끝난 후, 모치즈키는 저세상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림보에서는 또다른 일주일이 시작됩니다. 시오리는 보조에서 정식 직원이 되었고, 이제 새로운 사람이 면담을 하러 문을 두드리네요. 


진득한 리뷰

저세상에 가기 전 일주일, 영원히 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추억을 골라야 한다면?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림보에 방문한 사람들과 같이, 우리도 면담실에 앉는 순간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민을 하게 되니까요. 집중이 안 되는 영화라니, 이상하지만 저는 이게 영화가 의도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동안, 결국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 사실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전철을 타는 이야기, 엄마 무릎에 누워있던 이야기, 선물 받은 옷이 얼마나 예뻤는지 설명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들을 관객 개개인의 이야기로 대체한다고 해도 영화는 똑같이 흘러가게 되겠죠. 

 

글쎄, 저는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우리 강아지를 처음 만났던 날... 아니, 그 날보다는 온가족이 집에 함께 머물던 날, 같이 집 근처 산책을 하고, 꼬질 해진 강아지를 보고 같이 웃고, 목욕시키고, 같이 맛있는 것을 해 먹는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간. 가만 보면 저에게 영원히 머물고 싶은 순간은 대단하게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반복되는 우리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인 것 같아요. 이상하죠. 현실에서는 통장에 돈이 꽂히는 순간, 갖고 싶은 것을 사는 순간, 로또에 당첨되는 순간, 뭐 이런 걸 바라면서 사는 것 같은데. 그런 순간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던걸요. 

 

"달은 참 재밌죠?

실제 모양은 변하지 않지만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보이니까요."

 

영화 속에서 시오리에게 직원 나카무라가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못알아들었으려나? 라고 말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나카무라. 시오리 또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선택을 안 하고 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몰라요. 시오리는 이제까지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치즈키가 떠나는 것도 너무나 슬퍼하죠. 모치즈키와 달리 시오리는 아직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모치즈키는 교코가 선택한 추억 영상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알지도 못한 사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 달은 똑같은 달이지만 빛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되듯, 인생도 같습니다. 내가 보기엔 초승달인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보름달로 보이기도 하듯이, 별 볼 일 없던 내 인생의 조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기도 하니까요. 또한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겠죠. 결국 모치즈키가 선택한 소중한 순간은 나를 생각해준 사람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장면, 나의 인생을 행복하게 돌아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자연스럽게 내 인생을 돌아봅니다. 내가 성공한 인생인가? 이름 좀 날렸나? 그런 게 아니라,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찾게 되면서, 또 다른 시각으로 나를 조망하게 되죠. 현실에서 사회가 만들어둔 시선에서 나의 주변, 그리고 온전한 나 자신의 시선으로 옮겨오는 내 삶, 내 행복, 소중한 순간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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