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멸망 전, 백제가 멸망하던 시기, 신라가 부흥하던 시기, 600년대. 여러분의 뒷마당에서 이 600년대의 고구려 유물이 발견된다면 어떨까요?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입니다.
세계 2차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영국, 서퍽지역.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저택에 살고 있는 이디스 프리티 부인(캐리 멀리건 배우)은 아마추어 발굴 전문가, 배질 브라운(레이프 파인즈 배우)을 고용합니다. 남편 생전 집 뒤편에 있는 거대한 둔덕이 있는 땅을 구매해둔 그녀. 이 곳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였죠. 그리고 드디어 이 곳을 한 번 발굴해보려 합니다.
발굴을 시작하면서 어떤 둔덕을 먼저 파야 할지 갈등이 있던 사이, 브라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흙더미에 매몰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난 후, 브라운은 프리티 부인이 느낌이 온다며 발굴하자고 했던 그 둔덕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속을 뚫고 뛰어가 물을 퍼내고 발굴지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고, 흙투성이로 노력과 열정을 쏟은 브라운. 아니나 다를까, 이 곳에서 거대한 배 모양의 유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의*이하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적이 발견된 순간 지역 박물관에서도, 대영박물관에서도 찾아와 이 곳의 유물 발굴을 맡으려고 합니다. 브라운이 어딘가에서 학위를 받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무시를 받는 상황이었죠. 프리티 부인은 신뢰하는 브라운을 두둔하지만 결국 국가적 차원의 발굴을 위해 대영박물관의 거만한 고고학자와 발굴팀이 파견됩니다. 화딱지가 난 브라운은 이 곳을 떠나려 하지만 프리티 부인의 어린 아들이 찾아온 후, 아내와의 이야기 끝에 마음을 돌리게 됩니다. 다시 발굴팀에 조인한 브라운은 이제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합니다.
그 사이, 프리티 부인의 건강은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발굴 현장을 관찰하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썼죠. 드디어, 배 모양의 거대한 유적 안에서 부장품들이 발굴되기 시작합니다. 동전, 접시, 깨진 파편 등 수 많은 유물들이 그대로 묻혀 있던 이 곳은 600년대 앵글로색슨족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이는 영국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자, 영국인들의 뿌리를 찾은 역사적인 현장으로, 오랫동안 아무도 몰랐던 앵글로 색슨족의 뛰어난 문화와 예술이 세상에 밝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리티 부인은 이 유물들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합니다. 브라운의 이름이 최초 발굴자로 기록되길 신신당부한 프리티 부인. 죽어가는 엄마에게 앵글로색슨의 배로 우주여행을 시켜주는 꼬마 아들, 열정과 사랑을 쏟은 발굴장소를 보존하고 길을 떠나는 브라운. 그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번 2021년 1월 말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신작, 더 디그 (The Dig)입니다. 제목이 '발굴' 이듯이, 영화의 스토리는 발굴에 대한 아주 단조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지루하게 진행되는 듯 하지만, 영국 교외의 아름다운 풍경, 서정적인 분위기, 프리티 부인의 멋진 저택을 보며 눈이 즐겁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 드는 작품입니다. 조용하고 잔잔한 영화,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를 참 좋아합니다. 대학도 역사교육과를 나왔죠. 대학시절 답사를 가서 유물 발굴 현장과 유물 복원에 대해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들었던 오묘한 기분이 이 작품을 보면서도 들었어요. 유물을 통해 오늘날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우리의 과거, 수 백 년 전 사람들이 손으로 만들고, 썼을 그 물건을 오늘날 우리가 본다는 것. 그때의 사람은 없고, 그 시절의 분위기도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물건이 남아 오늘날 사람들에게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 그 이상한 특별함. 타임머신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 무덤 발굴에 대해 쓴 책을 읽었어요. 투탕카멘 묘실의 문턱에 섰대요. 3천년 만에 사람 발길이 처음으로 닿았을 것이죠. 페인트가 칠해진 곳에 손가락 지문이 남아있더래요. 그는 이렇게 말했죠.
"시간이 무의미해졌다."
서퍽에서 발굴된 앵글로색슨 무덤은 '서턴 후' 유적으로 불립니다. 대표적으로 이 곳에서 출토된 앵글로색슨의 헬멧과 벨트를 지금도 대영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죠. 서턴 후 발굴지도 현재 직접 가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우리는 체감하기 어려워서 삼국시대를 비교해 포스팅 제목을 지었습니다. 이 유적의 발견은 시대적으로 비교했을 때 멸망한 백제 의자왕의 왕릉을 찾은 것과 같고, 고구려 영양왕, 신라 무열왕의 왕릉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영국인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발견이었다는 뜻이죠.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단조로운 스토리와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이 영화의 불안한 시대적 배경이 잘 나타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시작 직전. 발굴지 주변으로 공군 기지에서 날아다니는 비행기 소리가 울리고, 훈련을 받던 공군이 추락한 현장도 보게 됩니다. 프리티 부인이 병원을 가기 위해 런던에 갔을 때에는 곳곳이 전쟁준비로 한창이고, 군인들이 소집되며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전쟁준비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죠. 프리티 부인의 사촌, 로리도 곧 공군에 소집될 예정입니다. 두렵고 불안한 가운데 사랑에 빠지는 로리와 발굴팀의 페기의 모습. 이 불안한 상황에도 열정적으로 발굴을 해내는 모두의 모습.
영화를 보는 우리는 여러 시대를 경험합니다. 첫 번째는 발굴이 진행되는 영화 속 현재. 즉, 전쟁을 앞둔 영국의 모습.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는 유물에 따라 상상할 수 있는 먼 옛날 앵글로 색슨 시대. 우주를 꿈꾸는 프리티 부인의 꼬마 아들의 미래.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역사 공부해서 어디에 쓰냐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역사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진부한 설명이 아니라, 역사라는 한 단어에 담긴 수 많은 과거 사람들의 목소리와 빛나는 문화, 우리를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만든,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의지, 마음의 주축이 되는 그 힘을 말이죠. 단순히 글자로 나열된 책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역사를 만나는 순간, 역사는 단어가 아닌 타임머신이 됩니다. 영화, '더 디그(The Dig)'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에 맞닿아있습니다. 편안하게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올 역사의 순간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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