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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의 고급스러운 복수극 - 영화 <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2016) >

진득한 영화리뷰

by 호누s 2020. 12. 1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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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의 고급스러운 복수극 - 영화 <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2016) >

 

넷플릭스에 올라온 디자이너 톰 포드의 날카롭고 차가운 스릴러,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2016)"입니다.  


1. 영화 정보

톰 포드 감독의 녹터널 애니멀스 정식 포스터

감독: 톰 포드

출연진: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 마이클 섀넌, 아론 테일러 존슨, 아미 해머

장르: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1시간 56분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티빙


2. 줄거리

전시 작품을 뒤로한 수전의 대비되는 모습

엄청나게 뚱뚱하다 못해 살이 다 늘어진 여성들이 나체로 살을 출렁거리며 춤을 춥니다. 줌아웃하고 보니 이것은 주인공 수전(에이미 아담스 배우)의 전시회 작품이군요. 전시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경이롭다는 듯 그 영상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 속의 주인공 수전,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성공적인 전시라는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그녀. 아침에서야 얼굴을 보인 잘생긴 남편은 전시에도 오지 않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요구에도 일때문에 뉴욕에 가봐야 한다며 떠나버리죠.

 

공허한 가운데, 통 연락이 없던 전남편으로부터 책이 한 권 왔네요. 수전에게 영감을 받아 직접 썼다는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 입니다. 책의 제목은 사실 전남편이 수전을 불렀던 별명이었죠. 수전은 반가운 마음 반, 이상한 마음 반으로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책의 주인공은 토니 헤이스팅스라는 남자입니다. 토니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장거리 운전을 떠나는데. 핸드폰도 불통이 될 정도로 한적한 텍사스의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던 어두컴컴한 밤. 난데없이 차량 두대가 시비를 걸어오더니, 결국 토니 가족의 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안하무인으로 위협을 가하는 남자들. 타이어를 고쳐주겠다더니, 토니를 폭행하고, 딸과 아내를 납치해 어디로 가버렸습니다. 토니는 어딘지도 모를 곳에 버려두고 말이죠. 다음날 아침, 겨우 경찰을 찾아 어젯밤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가족들을 찾아달라 합니다. 사건을 맡은 바비 형사와 함께 길을 따라 수색을 하던 중, 버려진 트레일러 인근에서 나체로 죽어있는 아내와 딸의 시신을 발견하고 맙니다. 

 

수전은 책에 깊이 빠져듭니다. 주인공이 겪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지, 숨을 헉하고 쉬며 멈추기를 여러 번. 이상한 마음에 딸이 잘 있는지도 전화해보고, 남편에게도 전화해봅니다. 남편이 뭔가 의심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군요. 불안한 그녀 머릿속에 전남편 에드워드와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딸과 아내를 찾는 토니의 모습

에드워드와 수전은 같은 고향, 헤이스팅스 출신입니다. 작가가 되길 원하는 평범한 집안 출신의 에드워드. 부자 기득권 집안의 보수적이고 물질만능적인 부모님 아래 자란 수전.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생각했지만, 수전의 엄마는 별 현실적인 미래 없이 이상적인 꿈만 가진 에드워드가 약한 남자라며 결혼을 반대하죠. 그런 엄마를 비난하는 수전. 엄마는 이 결혼을 후회할 것이며, 곧 너도 나처럼 될 거라는 말을 남깁니다. 그렇게 반대에도 결혼을 했지만, 학교는 더 다니지 않고 본인에 대한 글만 쓰는 에드워드가 점점 못마땅해지는 수전. 그녀는 대학원을 다니던 중 지금의 남편인 허튼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이제 그녀는 에드워드를 떠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더 이상 못살겠다 말하는 수전과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에드워드.

 

한편, 책 속 주인공 토니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범인을 찾았다는 바비형사의 말에 그를 찾아왔습니다. 한 놈은 죽었고, 한 놈은 지문이 발견되어서 명확하게 증거가 있지만, 가장 악랄한 한 놈은 물증이 없다는 것. 범인들을 알아보는 토니. 증오로 가득하지만 범인들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뗍니다. 문제는 범인들이 검사와 짜고 쳐서 석방되었으며, 법적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것인데...

 

결말 * 스포 주의 *

폐암이 전이 돼 1년 안에 죽는다는 바비 형사는 본인은 잃을 게 없다며 토니에게 이 범죄자들을 직접 처벌하자 제안하고, 토니는 이에 응합니다. 곧이어 그들 앞에 그 범인 둘이 잡혀왔지만, 실랑이하던 사이에 도망쳐버리는데. 바비는 그중 뒤쳐진 하나를 무자비하게 쏴버립니다.

소설과 연결되는 집안의 그림

수전은 다시 과거를 회상합니다. 떠올리기 싫었던 끔찍한 그녀의 행적. 에드워드와의 사이에 임신을 했던 수전은 현 남편이자 당시 바람피던 허튼과 함께 병원을 찾아 아기를 지웠습니다. 병원을 막 나와서부터 후회한다며 울던 그녀는 에드워드만 모른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허튼의 품에 안겼지만,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에드워드가 그들 앞에 서있었습니다. 소름끼치게 책을 읽을수록 겹쳐지는 그때의 그 기분,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에드워드에 대한 그리움. 

 

다시 소설 속, 토니는 바비에게 왜 죽였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이번엔 도망간 마지막 한 놈을 찾으러 총을 가지고 토니가 이동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트레일러에 숨어있던 범인, 로이. 이제야 토니를 보고 그 날의 그 끔찍한 범행을 놀리듯 실토하고, 토니를 도발하는데. 그러던 순간 범인이 쇠꼬챙이로 토니를 내려치고, 토니 또한 범인을 향해 총을 쏩니다. 눈을 뜬 토니,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범인은 총에 맞아 즉사했고, 토니는 트레일러 밖으로 기어나오지만, 다시 땅에 쓰러져 죽고 맙니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 수전은 에드워드에게 잘 읽었다며 몇시에 어디서 보자며 메일을 남기고, 잘 차려입은 채 레스토랑에 먼저 도착해 그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영영 나타나지 않습니다. 설레던 수전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며, 모두가 떠나는 레스토랑에 혼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3. 리뷰 & 해석

  관람 중 '녹터널 애니멀스' 라는 책이 주인공 수전과 전남편 에드워드의 과거를 투영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 토니, 그리고 에드워드로 등장하는 배우는 모두 제이크 질렌할이고, 수전과 에드워드 사이의 대화가 소설 속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죠. 게다가 소설과 현실에서 비슷한 구도, 비슷한 눈빛, 자세로 연출한 장면들 또한 수전이 소설에 심각하게 몰입해 본인의 옛 과거를 느끼고 있다는 것도 보입니다. 첫 관람 후 영화가 충격적이고, 잔인하고, 끔찍하다는 생각에 그저 이 정도로만 생각했던 이 영화,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오며 재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재관람의 경험은 독특합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해 주니까요. 

 

제목, '녹터널 애니멀즈'. 해석하자면 '야행성 동물' 이라는 뜻입니다. 야행성 동물의 특성, 어떤가요? 박쥐, 늑대, 부엉이 등 육식 동물들이 밤에 활동을 합니다. 흔하게는 고양이도 야행성이라고 볼 수 있죠. 에드워드가 수전을 '야행성 동물' 이라 불렀다는데, 그녀가 오랜 시간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에 뭔가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속에서도 수전은 밤에 내내 깨어있다가 책을 읽으니까요. 이런 야행성 동물들은 대체로 상위 포식자이며, 밤에 잘 활동할 수 있는 눈과 사냥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먹이로 사냥당하는 동물들은 반대로 상황 파악이 어렵습니다. 그저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죠. 소설 속에서 토니와 가족들은 보이지도 않는 밤에 교묘하게 활동하는 범죄자들, 이 야행성 동물들에게 공격을 당합니다. 어떤 힘도 쓸 수 없었고, 무자비하게 당하기만 한 토니.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었습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군요. 어느 날 밤, 에드워드가 모르는 사이에 수전은 낙태를 했습니다. 그것도 불륜남과 함께 말이죠. 난데 없이 에드워드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었습니다. 이 모습이 그대로 소설 속 토니의 모습에 투영되었다고 보이네요. 

 

 

이렇게 보면 토니는 작가인 에드워드 본인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한 형사 바비도 에드워드 본인이라고 봅니다. 절망에 빠져 얼이 나가 있는 토니. 안됐지만 범인이라도 꼭 잡겠다 담담하게 말하는 형사 바비. 에드워드는 이렇게 절망적이었던 본인의 과거와,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현실의 본인을 나눠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곧 죽을 예정이고, 가족도 없으니 범인을 불법적인이 아닌 방식으로 직접 처단해도 나는 잃을 것이 없다는 그 마인드는 결국 에드워드 본인의 현실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소설 속 토니의 아내와 딸은 에드워드 본인이 사랑했던 그 때 나를 사랑하던 수전과, 낙태한 그의 아기입니다. 야행성 동물에 의해 무참히, 고통스럽게 죽은 그의 사랑, 그 자체. 범죄자들, 이 야행성 동물들은 결국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수전을 의미하죠. 나를 포기하고, 사랑을 배신하고, 함께 꿈꾸던 이상을 내치고 그녀의 엄마가 말하던 '현실'과 '물질적인 풍요'를 찾아 떠나버린 잔인한 그녀. 끝까지 에드워드를 버리고 낙태와 불륜의 사실을 비밀로 하려 했던 수전. 소설 속 범인들이 황량한 사막의 어둠 한 가운데 에드워드를 버려두고 떠났던 그 모습이 연상되지 않나요? 그러나 결국 이 사실은 에드워드에 의해 밝혀졌고, 소설 속에서는 토니와 바비 형사가 아내와 딸의 시체를 찾아내면서 모두 밝혀져버렸습니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비주얼 자체가 가히 충격적이라 한 번 본 이상 잊혀지지 않습니다. 출렁거리는 살을 흔드는 알몸들. 수전의 전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잠깐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예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죠. 화려해보이고, 눈을 휘둥그레 해지게 하는 볼거리처럼은 보이지만, 이걸 정말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격식 있게 차려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경망스럽게 흔드는 뚱뚱한 여성의 알몸을 지켜보는 것... 이건 그저 관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가득 채운 거대한 화면, 고대에는 풍요를 나타냈을 그 몸을 보며 현대의 상류층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알맹이는 비어 있는 거대한 풍선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전시를 성공적이었다 평하는 것을 보며 그녀가 있는 사회의 가식과 허영심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수전은 영화속에서 직접 말하듯이, 이 전시가 이미 '쓰레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실 진짜 예술, 그 알맹이를 알고 있습니다. 진짜 사랑, 진짜 감정 등 그 진정성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러나 그녀의 현실은 부와 명예를 위해 그 진정성이 없는 예술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잠깐 전시회장의 수전의 모습을 볼까요? 화려한 배경의 뚱뚱한 여자에 대비되는 그녀의 모습. 검은 원피스, 마른 몸. 그녀의 전시는 자아가 부재한 예술, 그 자체로군요. 그녀는 본인이 부정했던 본인의 '엄마'와 동일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글은 이와 전혀 반대였습니다. 에드워드는 본인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수전이 지적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죠. 왜 너에 대해서만 쓰느냐는 것. 에드워드는 꾸며낼 줄 모르는, 진심과 사랑, 감정이 전부인 사람입니다. 허영으로 나를 부풀리고 거짓의 나를 꾸며내는 사람에 비해 솔직한 사람은 그 약점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약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본인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수전의 가슴 속에 대못을 쾅쾅 박는 글을 써냈습니다. 영화속에서 수전은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라 현실로 깨어나곤 합니다. 연출도 마치 심장이 쾅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듯 하죠. 

 

수전은 예민하며, 예술작품을 읽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술사 전공도 그렇고 하고 있는 일도 그렇죠. 에드워드는 수전이 글 안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지 알고 있었습니다. 글이 '토니'의 시점에서 쓰였으니, 독자는 토니의 눈으로 소설을 따라가게 됩니다. 즉, 수전은 책 속에서 에드워드의 마음으로 본인이 에드워드에게 저지른 죄를 돌이켜보게 된 것이죠. 이로서 수전은 그 때의 그 사건들을, 죄책감을, 절대 잊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수전은 본인도 알고 있듯이 모든 것을 가진 여자입니다. 부와 명예, 잘생긴 남편까지 있어요. 그러나 하는 일은 만족스럽지가 않고, 남편은 몰래 바람피우고, 딸은 멀리 있습니다. 집은 완벽해 보이지만 인테리어마저 차갑고 딱딱해 보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그녀, 사랑이 그립고, 그럴수록 그저 사랑이 전부였던 전 남편이 생각나는데. 이 참에 다시 만나 웃으며 이야기도 하고, 지난 일에 대해 사과도 하고 싶지만, 그 소설을 끝으로 다시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에드워드는 빈자리로 말을 대신합니다. 다신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사과도 받아 줄 생각이 없고, 너는 영원히 나쁜X이며, 영영 죄책감에 썩으며 살라고.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는 이렇듯 사랑과 가족을 버린 죄를 미러링해 잊지 못하도록 눌러새기는 처절한 복수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디 잘먹고 잘살기만 해 봐! 이 나쁜 x아!" 이 한 마디를 어렵고 고급지게 표현한 소설이자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디자이너 톰 포드 감독의 소름 끼치게 차가운 고급스러움이 담뿍 들어 예술에 가까운 미장센, 무시무시한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와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가 어우러진 뛰어난 작품입니다. 디자이너가 만든 영화는 어떨까? 궁금하시다면 추천해드리며, 독특한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절대 놓치면 안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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